스포츠는 '각본 없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한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 결과를 결코 단정할 수 없기에 스포츠만큼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도 없다는 뜻에서 나온 말일 터다. 응원하는 팀이 거의 질 뻔한 경기를 막판에 뒤집었을 때 그 희열은 스포츠가 주는 매력 중의 매력이다.

그런데 스포츠의 감동적인 드라마가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만으로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의 룰에 따라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는 심판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역할을 하는 제3자로서의 심판이 필요하다. 세계 정상급의 우리나라 핸드볼 팀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 심판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본선 진출을 놓친 것은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 경기를 보면서 재미와 감동보다는 울분과 분노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벤치마크테스트(BMT)의 무용론' 등의 문제제기를 지켜보면서 사업자를 선정할 때 과연 합리적이며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어서다. 좀 더 구체적으로 BMT 결과와 가격을 종합해 평가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도 여전히 최저입찰제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결국은 가격경쟁에서 밀린다면 어떻게 시장에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너무 식상한 얘기라 더 이상 왈가불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극히 원론적인 말이지만 가격과 기술을 종합 평가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하루빨리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술평가의 방법인 BMT의 과정과 결과를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며,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IT 프로젝트 사업자 선정 문화가 더욱 성숙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마침 최근 BMT 관행을 개선하려는 제도 마련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차제에 BMT와 관련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것들을 말해둬야 하겠다. 무엇보다 발주처와 벤더가 밀월관계를 맺고 '짜고 치는 고스톱'식으로 진행되는 부조리적인 BMT는 이제 근절돼야 할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혹자는 우리나라 IT비즈니스 현실을 너무 모르는 유아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그대로 놔두자는 것인가. 미리 업체를 선정해 놓고 감사에 대처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BMT를 악용하는 행위는 이제 끝내야 할 것이다.

BMT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첫 번째 개선 항목으로 대두되고 있는 비용부담 문제 또한 말만 꺼내지 말고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 벤더들이 BMT 비용을 보상받지 못하는 것은 국내 IT산업의 대표적인 불합리한 관행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번 BMT를 하기 위해서는 서버, 디스크, DBMS 등 기본적인 시스템은 물론 값비싼 테스트 툴을 갖춰야 하는데다 애플리케이션의 포팅이나 이전 등으로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짧으면 3주, 길면 6개월이 넘게 걸리는 BMT에 드는 비용은 많으면 몇 십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들러리로 BMT에 참여한 업체들의 피해와 그 억울함은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거니와 선정된 업체 또한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라도 BMT 비용을 발주자가 부담한다는 공론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며, 얼마전 차세대 시스템의 BMT를 추진한 일부 금융기관들이 일부나마 BMT 비용을 부담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탄으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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